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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사랑하다

#108_[천서봉] 무서운 아이스크림

 

 

 

 

 

 

 

 

[천서봉]무서운 아이스크림

 

 

녹아있다, 라는 말 아시죠? 사상이 주체에 역사가 책 속에 우울이 삶 속에 내 안에 당신이

 

추억은 방울방울, 한 주검 속의 세계사와 한 그루 나무에 배어있는 수 천 년의 손금 같은,

 

가령 작은 세포 속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를 배후조종하는 우주(宇宙) 말입니다

 

차갑게 공생하는 불안의 빙하는 언제든 녹아 이 작은 지구와 지구의 감정을 덮칠 것만 같아요

 

부온탈렌티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온해지고 몸은 자꾸만 더워져요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수많은 베리 베리들, 숨겨진 배리(背理)의 온도가 두렵습니다

 

얼굴이 녹아내리고 가면 위의 웃음만, 부지불식 아무도 구분 못 할 부드러움만 여기 남을까봐

 

아시겠지만 아이스크림은 폭발하지 않아요 조금씩 녹을 뿐, 그래서 유령보다 더 무섭습니다

 

 

 

『현대문학』ㅣ 2013년 10월호

 

 

 

 

겨우 한고비를 넘겼다.

왜 시를 놓지 못할까. 내 정신은 점점 망가지고 있는데 어떤 위안이나 치료가 되지 못하는 시를 나는 무엇때문에 쓰고 있는가. 단 한 명이라도 내 시를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거라던 마음은 이런 순간에 어디에 놓일 수 있을까.

 

되도록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살고 있다. 일에 관계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 

 

자, 우리는 왜 모두 변하고 모두 잊혀지는가. 이런 공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나는 어떤 얼굴로 그것들을 맞고 보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