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무 오래 사랑하다

#109_[천서봉] 곤

 

 

 

 

 

[천서봉]


 

 

결별을 겪은 몸을 벽에 걸어두고 나니 어제 입었던 연민은 금세 지루하고 비대해져 버렸다

거울 속에 갇힌 겨울 속에는 당신이 인증해준 읍소가 있어 이제 계절과 상관없이 나는 춥다

당신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 두었고 그건 정련된 농담 같아서 우린 눈으로만 웃었다

입 안에서는 소란한 나무들이 자라 입을 벌릴 때마다 낙엽이 검은 기척들을 안고 쏟아졌다

문장을 버리고 다정을 폐기하고 이제라도 남은 겨울을 멀리 남극까지 흘려보낼 수는 없을까

모든 삶을 가사(假死)라 하고 유빙 위에 누워 길고 긴 펭귄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우리,

아픈 것들만 골라 먹으며 왔지, 沒은 어떤 歿이 되고 나는 잠들기 직전에만 잠깐 희열했다

다시 만난다면 그땐 누워 누워서 세상에서 가장 긴 밤을 건너가자 나의 말들아, 나무야

 

 

 

『시와시』ㅣ 2013년 가을호

 

 

 

 

현대시 릴레이 편지를 쓰느라 일요일을 다 바쳤다.

글이란 참 고치고 고쳐도 한이 없어서 결국 마감날까지 가야 끝이난다.

 

LG야구도 끝이 났다. 참 안풀려도 안풀려도 그렇게 안풀릴 수가. 어찌되었건 고생많았다 선수들, 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1년 동안 그들로 인해 즐겁고 안타깝고, 그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보고픈 사람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나?

다시 만난다면 아무말없이 그대들과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다.

 

조금 피곤하고 조금 우울하다. 가을이 몰래 다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