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봉] 나무 호텔
그러므로 나는 오늘 지루한 사막을 가득 메운 모래가 아니다
백자의 비명, 귀가 자라 작년의 소리를 듣는 나는 그러나 로비가 아니다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낙엽의 손끝은 나이테가 아니다
객실은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무기력이 아니며, 혹은 끝없이 자라나는 허공도 아니다
일단 새들은 내가 아니다 바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정으로 나는
나무 꼭대기에 걸린 단 하나의 죄에 대해 읍소했지만, 사실 그것도 詩는 아니었다
그러나 저기서 하룻밤 묵어가는 별이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므로
너무 작아서 너에게 가 닿지 못한 내 목소리가 내일의 모래는 아니다
나무 호텔은 나무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다 아닌 것들의 밤이 넓고 유순하다
『천년의 시작』ㅣ 2017년 겨울호
[단상]
정말 오랜만에 글 하나를 올려둔다 오랫동안 발표를 고사해왔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무언가 때가 되었다 싶어서 다시 발표를 재개한 것도 아니다
온전히 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나는 단지 그것이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을 뿐이다
결과라는 것도 사는 동안에는 결국 하나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다시 겨울이고, 다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