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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사랑하다

#101_[천서봉]2월

 

 

 

 

 

 

[천서봉]2월

 

 

길옆 사시나무가 떨고 있어 품에 안고 돌아왔으나

 

집으로 돌아와 펴 보니 한 잎 낡은 여자였다

 

여자를 씻겨 저녁의 옷걸이에 걸어두었는데

 

젖은 말투가 바닥을 적셔 내내 겨울이었다

 

열린 창을 닫고 마저 내 귀를 닫고 북어의 몸에

 

불 꺼진 문자의 옷을 입혀주었다 달빛을 입고

 

노랗게 구워지는 물신物神들을 바라보다가

 

깨어나니 여자는 사라지고 낡은 편지가 놓여있었다

 

잃어버린 2월의 이틀이 거기 곱게 접힌 채 들어있어

 

미치지 말자 미치지 말자 주문을 외워보는 밤마다

 

한 움큼의 구름과 맹세가 텅 빈 천장을 떠돌았다

 

2월엔 어떤 불립不立의 무늬도 거짓이 아니었다

 

 

 

『현대시학』ㅣ 2013년 2월호

 


[단상]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했다 

몇 권의 아카데미 서적들을 읽었고 몇몇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모든 방식이 부질없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함께 연동되리라 믿었던 희망대신에 나는 딸아이가 앓던 감기를

전해받았다 간밤의 열병은 일종의 환각상태처럼 나의 공허와 겹쳐있었다

 

근래의 잡지를 읽으며 느낀다

글은 대체로 읽혀지는 것이지만 어떤 글은 발굴되기도 한다는 것

 

나는 나에 대한 연민으로 시조차 써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