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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아버지

#103_[김점용]검은 가지에 물방울 사라지면

 

 

 

[김점용]검은 가지에 물방울 사라지면

 

 

 아버지가 찾아왔다
 낯선 노인이 아버지 친구라며 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다가 우물가에서 혼자 놀고 있다고 일러 주었다.
 우물로 갔더니 일흔아홉의 아버지가 흰 수의에 삼베 꽃신을 신고 두레박에 손을 넣어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불렀더니 아버지 친구는 나뭇짐 때문에 애조원에서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며 거기로 가보라고 했다
 급하게 고개를 넘고 마구촌을 지나 숨을 헐떡이며 애조원에 도착했을 때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아버지는 흰 와이셔츠에 한복 바지를 입고 문둥이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불렀더니 그는 꿈쩍도 않고 대신 문둥이가 뭉개진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쉿거렸다
 등을 보인 아버지는 이번에도 아버지 친구일 터
 상심하여 돌아서는데 그가 이번 판만 두고 보내마,
 그랬다
 덜컥 겁이 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으니
 문둥이가 사라진 입술로 뭐라고 뭐라고 웅얼거렸다
 원문고개 호떡집 아줌마한테 물어봐라, 그런 뜻으로 들렸다
 그 집은 없어진 지 오래인데
 안방에 촛불을 켜둔 채 급하게 나왔는데
 힘이 장사인 아버지는 점점 더 젊어져서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젖히니 죽담에 선 어머니가
 아버지 옷을 입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산 것들에 매달렸던 검은 가지에
 저녁 빛을 모은 흰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물방울 사라지면 빛은 또 어디로 가는지 .......

 

 

김점용ㅣ『메롱메롱 은주』 문지

 


[단상]

 

점용형의 시집을 오랜만에

다시, 천천히 읽었다. 시간이나 사물의 재배치 혹은 혼동, 거기서 오는 충격들이

깊은 재미를 준다.  글을 읽는 중간 중간 윤의섭 시인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아마 그건 사건성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문체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것이 시읽기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좋아하는 두 시인의 중첩이

행복했다 점용형도 윤의섭 시인도 내 마음 속 깊이 빚을 진 분들이니까.

아, 물론 이 시는 단언컨대 '오늘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의 연장이고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형의 시들 속엔 내 로망이 면면 숨어 있음을 고백한다.  

 

어떤 시를 쓰느냐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떤 시를 쓰느냐는 중요치 않다.

자기가 운용할 수 있는 극한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결국 문제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한 그 극한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점용형의 시에는 그런 비장함이나 쓸쓸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