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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사랑하다

#105_[천서봉]경계들

 

 

 

 

 

 

[천서봉]경계들

 

 

며칠째 비가 내리는 오늘은 빗방울도 졸고 있습니다 지형도와 일기도를 겹쳐놓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소멸은 비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뼈와 살이 한데 어우러지는 그런 슬픔을 자정엔 덮습니다

 

당신에게 편지 쓰는 대신 대문에 페인트를 칠합니다 곳곳에 튄 얼룩들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자주 꿈과 오늘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안과 밖이 모호합니다 물매를 따라 구름의 체취가 흘러내립니다

 

상처 투성이었던 당신이 토마토보다 물리적입니다 오후엔 물시멘트비가 무지개보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고 동시에 우리는 불안합니다 풍신風神을 섬기는 어깨 위에 오늘도 한 채의 집을 지었다 허뭅니다

 

연대하는 것은 대개 한꺼번에 붕괴합니다 집이 우산보다 더 피로합니다 며칠째 비는 계속 내리고

 

자주 집과 몸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두렵습니다 건물이 나를 토해내고 토마토는 있는 힘껏 썩어갑니다

 

 

 

『현대시학』ㅣ 2013년 2월호

 

 

 

살아가기 쉽지 않다. 있는 힘껏 썩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