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즐거운 일기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손끝에서
비늘 벗겨져
내가 도마에 오른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등빛을 등에 달고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가
살에 매운 고춧가루 박고
아이들과 그 아버지의 한때
즐거움이 되어서
그들의 잠자리에 내가 함께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이연주ㅣ『속죄양, 유다』 세계사
시에 '싸우는 시'가 있고 '져주는 시'가 있다면 나는 결코 '싸우는 시'를 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천성이고 또 내가 일정부분 포기해야할 범주다.
잠이 오지 않아 이연주의 시집을 다시 읽었다.
어느 순간 부터 시는 공중으로 떠올라서 검은 연기만 남아버렸다.
무엇을 태웠는지, 아니 무엇을 태우고 싶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 왔다.
리얼리즘이 그립다거나 포스트모던 따위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아니다.
단지 나는 내 발이 디딘 곳을 찾지 못하겠다.
나의 고민들은 그렇게 잠들 곳을 찾지 못해 떠돌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가. 대답해줄 수 없나? 저렇게 섬뜩한 시를 적어놓고 나를 아프게하는
먼저간 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