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귀종불역방(鬼腫不易方)
소중히 꿰인 날들이 바늘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잔멸이 떠다니는 여름
코를 파고 파양(罷養)을 다했다
창애에 걸쳐 저희가 헛됨을 잃은 이 귀종(鬼腫)으로 연우(延虞)하소서
밤을 기어 다니는 잿빛 연기물(緣起物)이 있었지만
그 권 一은 낙질되어 비둘기가 토한 것 같이 되었다
너희 정상물은 이 변신물 위로 걸어오라, 불뢰자(不牢者)여
신이 자궁에 빠뜨린 발 한쪽은 우리 영혼의 합리이니
소금을 넣기 위해선 불순의 순도가 높아야 했다
악신일(惡神日)에, 사람의 풍식(風蝕)이 식기를 기다린다
몸에서 나온 변물(變物)을 끼얹은 곳에
아욱이 자라고 있었다
『문학 선』ㅣ 2012년 가을호
[단상]
그저 놀랍다,
이 시인은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것일까
歸宗을 鬼腫으로 바꾸어놓고 대체 '풍식(風蝕)이 식기를 기다린다'니
일견 그의 시가 너무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그저 내가 우려를 하나 더 보탠들
무슨 소용인가
대신 나는 형에게 박수를 보내려 한다
불소통의 혐의는 이미 모든 시인들의 것
아니 다시 생각해보자, 그의 손때가 묻었을 명심보감 사자소학 같은 것들,
그는 독자 대신 한자들과 소통하고 그 체계를 흔드는 것은 아닌가,
덧대어진 복화술을 따라가면 어느새 다시 뒤바뀐,
저 암호문을 해독하기 전에
그 전에,
시를 읽으며 내게 먼저 전해오던 어떤 뜨거움을 간직하려 한다
시를 다 읽고 뒤
내 안에도 '아욱이 자라'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면
내 필사가 얼마나 진심에 가까운지 전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