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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면도를 위한 에스키스

#027


 



#027_새벽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밤을 새는 일이 잦다
특히 마감일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다
충무로의 출력소와 사무실을 오가면서
하루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 밤이 다시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 그렇게 오고 가는구나 느끼면서
새벽엔 다 그렇게 아름다고 순해지는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그 뒤에 숨겨진 느끼지 못할 어떤 힘들을 느끼면서
모질게 굴었던 나의 과거에 용서를 구하면서
작업의 마지막날이라고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또 살아야겠구나 다시 한 번 마음 먹으면서
그렇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친다


그런 새벽엔 사진도 찍고 싶고

일과 관계없는 글도 쓰고 싶고
꾸벅꾸벅 졸며 카페에 오래도록 앉아있어 보고 싶고
어느 여관에 들어 미치도록 자보고도 싶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하시는 실비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싶고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다시 부끄러웠으면 좋겠고
좋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으면 좋겠고
커피가 식어도 좋을 담배를 한 개피 정도 피웠으면 좋겠고


문득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사람 지금 뭐하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여전히 내 삶이 아름다운 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