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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사랑하다

#043_[천서봉]나의 늙은 군대는,


 




[천서봉]나의 늙은 군대는,

-詩의 나라


나의 늙은 군대는, 사람들 가끔씩 올려다보는 저녁의 추억,
그 추억을 일시에 점령하는 붉은 구름의 영혼 같은 거
착한 상인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저녁의 셔터음처럼
드르르륵 발사되는 단호한 외침 같은 거

나의 군대는, 수명을 모르는 빈 마당의 촉수 낮은 전구와
그 전구가 지배하는 평상의 낡은 네모와
네모가 만들어내는 엄격한 그림자에 놀라 커엉컹 짓는
개 한 마리, 누렁이가 지키는 놋쇠그릇의 둥근 상처 같은 거

후회스러운 것은 때때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거
점호 나팔 혹은 그 소리를 닮은 노트에 적힌 긴 주어들을
자꾸만 잃어버렸으므로, 달큰한 잠이 조금씩 회군하던
내 머릿속 위태한 연안으로부터의 어떤 망명-

그리하여 홀로 남겨진 외로운 抒情의 가치가
시월의 빽빽한 숲 속으로 우리를 이끌었다는 거

그러나 나의 늙은 군대는, 그 숲의 백양나무처럼 서서
낡은 고독을 기억하고 고독의 처음 느낀 입술을 기억하네
언제든 불러 모을 수 있는 이 가난하고 슬픈 기운들,
나는 지금 노을 지는 쪽에 자리 잡은 어떤 작고 오래된 제국을 보네


현대시 ㅣ 2011년 가을호


[단상]
내 시에도 메타-시가 많아 진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우울하다
두번째 시집은 다들 그래서 형편없다 하잖는가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뒤를 따르는가 싶어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이 졸시는 오래 아껴온 것 중 하나다, 아마도 3,4개월은 계속 다듬어오지 않았나 싶다
근래, 김현의 글을 다시 읽고 있다 자꾸 메타시를 써내고 있는 이유도
여러 평론가들의 글을 탐닉한 결과인가 싶다
어제는
'그대의 글은 딱- '문지'풍이야 아니, 아니 내가 잘 못 말한 거 같아 천서봉풍의 글을 쓰면 그만인거지
가장 '천서봉'다운 것을 쓰면 되는 것이지' 라고 소설가 임영태 선생이 내게 이야기해주셨다
물론 칭찬해 주시는 것도 있지 않으셨다 근래 만난 분들 중에 '어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