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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면도를 위한 에스키스

#051_가갸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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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란 문학 텍스트 속에 이미 내재한 상태라기 보다는 읽는 시선들이 부여한 의미에 의해 발견되는 것에 가깝다> (현대시 2012년 3월호) 라고 말한 송종원 평론가의 말은 슬프다 이 말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슬프다 새로움이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어서 슬프다는 말이 아니다 그 뒤에 남겨진 몫이, 글쓰기에서의 새로움을 판단하기 위한 담론의 형성과 그 힘든 혼돈의 과정만이 '새로움을 생산할 동력'이 될 것이라는 그 뒤의 몫이 마음 짠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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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담론을 형성하는 평론가의 자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읽히기도해서 한편 작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에 더더욱 슬프다 작가의 내부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담론이 형성되고 사라지고 씌어졌다 지워진다 '나는 무엇이 새로운가' 라는 물음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하지 않는 작가가 과연 있을까 사물이건 텍스트건 그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나름의 공식을 짜고 긴 밤 앞에 마주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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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그런 슬픈 작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다시 이 말에 주목한다 <문학 텍스트를 읽는 일은 그것의 진보적 면모나 진부함을 명확하게 결정하는 일이라기보다, 그러한 판단이 어려운 지점을 찾아 새로움을 지난하게 추궁하고 또 추궁함으로써 그것이 재빨리 소비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는 일일지도 모른다> 왜 슬픈가 하면 짐짓 평론가의 영역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이 모든 과정은 그러나 평론가의 몫이라기 보단 작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류를 좇아 새로워보이는 것들에 휩쓸려가서는 자신의 글도 새로움, 혹은 새로움의 일부로서 소비되기를 원하는 작가의 다급한 마음을 돌려서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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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민하는 것 뿐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나 자신을 추궁하고 또 추궁해가야 한다 시에서의 새로움이란 사건성의 새로움이 아니다 시란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움도 결국은 내 안에 있는 것일 뿐이고 나의 추락이나 나의 미끄러짐 없이 내 텍스트가 추락이나 미끄러짐의 동력을 얻을리 없다 나를 재판하기 어려운 지점을 찾아가는 법은 처음으로 돌아가보는 것이다 시가 아닌 내 삶으로 돌아가는 것, 언제까지나 나를 타개하는 방법은 '가갸거겨'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