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봉]후생들
1.
또렷해지지 않는 생각들에 중독되어간다
어제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것이고 내일 나는 당신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禁書를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거기 내 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수신하지 않는 안테나는 너의 성기다 나는 그만 슬퍼져서 무성생식의 벌레처럼 웃었다
어느 지하실에선가 새고 있는 수증기, 그 수증기의 참 착한 고독은 네 머리카락을 닮아 있다 목소리는 목도리로 퇴화한다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마시다 조금 남겨두었고
분리되는 성분들은 별의 경로를 따라 휘어진다
2.
폐기되어야 하는 단어들에 관하여 우리가 담론할 때 나는 자주 빗방울처럼 끊어진다 탄환처럼 누군가 나를 찢는다 찢어진 구멍으로 햇살이 스미고 한 떼의 물고기들이 S자로 휘적거리며 들어온다 내가 부표처럼 돌아누울 때 겨울이 온다, 라는 문장을 고요히 관찰하면 우리는 영혼조차 環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안타깝지만 지구의 생물은 모두 돌아누울 줄 안다 뒤로 그림자가 생겨났고 그래서 감정이 생겨났다고……,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갑자기 현기증으로 아득해졌다 나는 <나>라는 단어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문 밖으로 나왔다
3.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오후가 腦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현실적이라는 말만큼 현실을 위해하는 단어도 없는데 나는 한 번도 현생을 위해 지느러미를 달아준 적 없다
나이가 들수록 또렷해지지 않는 생각들에 중독되어 간다
이것은 내가 다음 생으로 옮아가려는 준비라 믿는다
저녁의 아내는 나보다 베란다의 식물들과 말하는 것을 즐긴다 좋은 일이다 그것은 내 시보다 더 시적으로 은유한다
후생은 이종과의 교배를 허할 것이므로
퇴행한 웃음이 그 별에서는 성기라 불릴 것이다
문예중앙 ㅣ 2012년 여름호
[단상]
간신히 추스린다
더 가도 되겠냐고 나는 자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