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봉] 결핍들
손가락이 네 개라서 슬픈 밤, 네 개의 손가락이 유언장을 쓰고, 마지막은 그렇게 오는데 도대체 누가 없는 건가요?
이 빈약하고 다복한 밤의 집회, 둘 씩 둘 씩 짝을 지어 생각할까요? 하나가 나머지 셋의 수장이 되면 어떨지요?
주먹을 쥐어봅시다 다시 손가락을 펴 보고, 가위를 만들어 봅시다 다 됩니다 이게 역사인건가요?
소용돌이로 만들어진 얼굴, 그걸 좀 가지런히 펼쳐봅시다 인식되지 않도록, 물이 되어 흐르도록, 물이 되어 흐르다가 갈래갈래 나누어진다면 그 또한 진실입니까?
다섯 개가 아닌 네 개로 사는 일, 하나가 사라졌지만 그래서 더 또렷해진 우리의 밤, 이것은 진실이 아닌 것과 거짓의 차이, 하나는 마지막까지 슬픔입니까?
손가락 하나를 잃긴 했는데 도대체 누가 사라진 건가요?
문학선 ㅣ 2012년 여름호
[단상]
이건 시와 관계없는 다른 이야기지만
가난이라는 이유때문에 핍박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곁엔 많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그들을 생각하고 이렇게 시 걱정이나 하는 나를 생각한다
미안하다
당신에게 미안하고 당신을 닮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고상한 척, 아는 척, 점잖은 척, 혹시나 내게서
그런 냄새들이 날까봐
그 냄새들이 우리의 기억마저 해할까봐
문득 겁이나고 온몸이 서늘해지는 아침
미안하다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능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점점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이 확신이
이 확신의 슬픔이 내 마흔의 전부다
행운을 빈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