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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사랑하다

#072_[천서봉]Mass Study

 

 

 

[천서봉] Mass Study

 

 

 

연한 발가락들을 작은 화분에 나누어 심고 겨울엔 거기서 자라날 커다랗고 슬픈 머리들을 기다려야지

 

비라도 오면 지루한 상상들을 마당으로 불러 처마 밑 낙수의 말줄임표들을 별의 간격이라 일러두겠네

 

기형처럼 솟은 새벽의 머리 단정히 깎아주는 건 허락의 몸에 허락을 하나 더 덧붙이는 일일 텐데

 

마당을 마당에게 돌려주고 아껴둔 광장을 비둘기에게 돌려주고 부러뜨린 물, 거친 단면에 내 검은 얼굴을 닦을 수 있다면

 

그런 아침은 분홍의 벌레처럼 소란하겠네 그 소리에 놀라 할머니가 살아오고 외삼촌이 돌아오고

 

통시적인 집에 모여 우리는 가문의 해체와 혼종을 노래하고 가계의 오랜 내력에 대해 공부하겠네

 

액자에서 오려낸 세월을 저녁의 가장 고운 부위에 걸어두고 불알 만지듯 외로움에 관하여 중얼거리는 오후

 

오후의 일부를 잘라 나의 두 귀에 붙여두고 계통수 그늘 아래 앉은 당신의 환한 슬픔을 듣겠네


 

 

『시와 경계』ㅣ 2012년 가을호

 


[단상]

 

바쁜 중에도 나를 만들어주느라 시간을 허비한 당신에게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