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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아버지

#073_[홍일표]텍스트

 

 

 

 

[홍일표] 텍스트

 

 

달빛 아래 짐승들이 헤매고 다니는 눈 덮인 내설악은 너무 밝은 텍스트다 멧돼지는 달빛을 모르고 내설악은 멧돼지를 모르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캄캄한 것 그리하여 달빛과 내설악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밤새도록 심심한 것

 

그렇게 서로 다른 표정으로 멀어지는 동안

 

구두 굽처럼 고독한 것

 

왼쪽 가슴 아래 심장이 딱딱해지는 것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어두워지는 장르처럼

 

 

홍일표 ㅣ『매혹의 지도』 문예중앙

 


[단상]

 

등단 무렵에 읽었다면 이 시집을 이렇게 좋게 읽었을까

시의 살 보다는 시의 뼈가 더 좋아지는 요즘

사랑도 변하고, 시를 보는 눈도 변한다

세상 무엇이 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좋은 시집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내가 새삼 부끄럽다

 

단, 우리가 올해 놓치지 말아야할 시집이 있다면

이 시집은 분명 그 중 한 권이 되어야한다

 

어제는 H시인, J시인 등을 만나고 들어와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세간의 소문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의 팔할은 오해때문이니까

시인은 시만 잘 쓰면 된다 내가 H시인을 존경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