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텍스트
달빛 아래 짐승들이 헤매고 다니는 눈 덮인 내설악은 너무 밝은 텍스트다 멧돼지는 달빛을 모르고 내설악은 멧돼지를 모르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캄캄한 것 그리하여 달빛과 내설악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밤새도록 심심한 것
그렇게 서로 다른 표정으로 멀어지는 동안
구두 굽처럼 고독한 것
왼쪽 가슴 아래 심장이 딱딱해지는 것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어두워지는 장르처럼
홍일표 ㅣ『매혹의 지도』 문예중앙
[단상]
등단 무렵에 읽었다면 이 시집을 이렇게 좋게 읽었을까
시의 살 보다는 시의 뼈가 더 좋아지는 요즘
사랑도 변하고, 시를 보는 눈도 변한다
세상 무엇이 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좋은 시집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내가 새삼 부끄럽다
단, 우리가 올해 놓치지 말아야할 시집이 있다면
이 시집은 분명 그 중 한 권이 되어야한다
어제는 H시인, J시인 등을 만나고 들어와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세간의 소문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의 팔할은 오해때문이니까
시인은 시만 잘 쓰면 된다 내가 H시인을 존경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