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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아버지

#074_[진은영]인식론

 

 

 

 

[진은영] 인식론

 

 

호랑이를 왜 좋아하는지 몰라요
작은 나무의자에 어떻게 앉게 되었는지 몰라요
언제부터 불행을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정원사가 가꾸지 못할 큰 숲을 바라보듯 말이죠
언제부터 너의 말이 독처럼 풀리는지 몰라요

 

맑은 우물은 여기부터
하나,
둘,
셋,

 

이 낡은 의자에서…… 언제쯤 일어나게 될는지
몰라요 나의 둘레를 돌며 어슬렁거리는 녹색 버터의 호랑이들
대체 뭘 바라는 거죠? 몰라요
이 시를 몰라요 너를 몰라요 좋아요

 

 

진은영 ㅣ『훔쳐가는 노래』 창비

 


[단상]

 

그녀는 지금 무언가 견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름에 받은 시집을 이제서야 겨우 정독하고

귀퉁이가 접힌 수많은 페이지들 중에 하나를 고른다

 

진은영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저런 시를 쓸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