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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아버지

#078_[임현정]없는 가게

 

 

 

 

[임현정] 없는 가게

 

 

 

금속성 침대에 누워

 

훅 하고 숨을 쉬면 벌어지는 일이란다

 

선반 위에는 반짝이는 틀니가 있지
캐스터네츠처럼 경쾌한 리듬이란다

 

동그란 테이블에는 가족사진을 찍은 액자
흰 구름을 터번처럼 두른 사내가 보이는구나

 

옷걸이 걸린 잿빛 양복도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담뱃재가 조금 떨어져 있는 주머니 속엔
어제의 약속이 구겨져 있지

 

자명종 시계는 침대 발치에 있는 슬리퍼에 맞춰져 있단다
검은 양말이 동그랗게 말려 있는 곳

 

등잔 갓 위의 먼지도
귀퉁이가 낡은 가죽 가방도
그대로 진열되어 있어

 

영원히 문을 열지 않는 가게
한쪽이 꺼진 소파를 파는 가구점도 말이다

 

젖은 골판지 같은 하늘도

 

링거액이 곤두박질칠 때면

 

모두 없는 가게란다

 

 

 

 

임현정ㅣ『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문동

 


[단상]

 

뭐랄까, 그녀의 시들은 동화 같은 신비로움 속에 있다

서정시건 환상시건

도무지 누구의 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유사한 시집들 속에서

그녀의 시는 차별화된 목소리를 낸다

무엇보다 그녀의 시가 읽을만하다고 느끼는 건

시로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욕망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낯선 풍경 속에서 한동안 즐거웠다

나와는 다른 시를 쓰고 있기에 더 소중한 동료가 아닌가

그래서, 또 그래야만

시 읽기가 더 재미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