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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면도를 위한 에스키스

#084_약현성당에서

 

 

 

 

 

 

 

약현성당에 갔었다

재수시절, 학원 앞에 있던 성당은

나를 닮아 늘 어딘가 절박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내게 약현성당이나 삼수공원은

내 긴 하루처럼 불안하고 동시에 고요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열 명이 모이면 열 명 중에 가장 시끄러운 한 사람이었다

고요가 필요할 때마다

저기서 내 불안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약현성당만은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었다

 

저무렵 내게 있어 건축과는 2지망에 불과했다

저 건물이 대한민국 최초의 고딕식 건물이라는 건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건축을 전공하며 알게되었을 뿐이다

 

그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나를 스쳐간 무엇인가가

훗날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사람도 때론 그러하다

 

그러나 어쩌랴,

중림동 약현성당으로부터

이십여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지나갔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는데

거기 나만 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