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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면도를 위한 에스키스

#124_두 번째 시집_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천서봉 시인의 두번째 시집. 첫 시집이 주로 ‘당신’으로 표상되는 애인, 아버지, 어머니, 또다른 자아와 화자 ‘나’의 이자관계에서 오는 사랑과 슬픔의 정서를 그렸다면, 이번 시집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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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봉] 목요일 혹은 고등어

 

 

-가령, 사람만한 고등어 두 마리가 카페에 마주 앉아있는 그런 풍경,

사람들은 그 신기한 풍경에 놀라 사진을 찍어대고

둘은 아랑곳없이 서로의 대화를 이어가는, 그런 목요일

 

 

몸에서 물이 흘러 바닥을 적시듯 그렇게 만납시다 사탕이 잔뜩 묻은 궐련을 쥐고

 

수요일은 이르고 금요일은 조금 늦고, 그러니 목요일쯤 만납시다 새벽이 고인 사발을 들고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우리가 너무 늙어있을 터이니, 그러니 목요일쯤 만납시다

 

어제까지의 등푸른 이별 이야기를 나누고 희롱 받은 혀와 살 몇 점을 술잔 두어 개에 나누어 담게

 

반쯤 마시고 또 반쯤은 거기 남겨둘 수 있게, 추분이나 동지 같은 근심의 귀를 이제 열어두게

 

수요일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에 대해,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의뭉 떨게

 

그렇게 우리 목요일쯤 만납시다 사랑이 아니었거나 혹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그러나

 

사랑이거나 사람이어도 괜찮을 목요일에, 마치 월요일인 것처럼, 아니 일요일의 얼굴로

 

흘러내린 표정이 바닥에서 말라가듯, 유통기한이 딱 목요일인 쓸쓸한 통조림처럼 우리,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ㅣ 문학동네

 

 

 

[단상]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고 또 관심을 가져주었다.그저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만 남기고 싶다. 또 살아갈 것이므로 그 감사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만 생각하겠다.

 

다시 무엇을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시를 써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인들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싶다. 이성복, 권혁웅, 조연호, 허수경, 허연, 송재학...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 시들.

지금까지 그러했듯 나는 여전히 그 근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