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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아버지

#028



 



#028_바퀴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_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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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퀴라는 말에는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우리 삶이나 길도 들어있고, 바퀴라는 말에는 오래된 나무의 갈라짐이나 쓸쓸함, 견딤 같은 말들도 들어있고, 바퀴라는 말에는 고무의 말랑말랑한 질감이나 부드러운 안락함도 들어있고, 무엇보다 바퀴라는 말에는 힘차게 뻗은 간살마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들어있다 시인의 말처럼, 나도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움직여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것이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사람도 결국 마찬가지 숙명을 지닌 것이다 바퀴처럼 둥글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움직이고 흔들리고 그것이 설령 뒤든 앞이든 계속 움직여야만 하는 숙명, 그것이 사람이 아닐까 사람에게 심장이 있고 마음이란 것이 정말 있다면, 그것은 둥근 모양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마음을 굴려왔겠는가


희망이라는 단어 만큼 희박하고 아픈 것이 없지만,
멈추어 선 바퀴를 다시 굴려갈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 뿐이다
우리의 마음 뿐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슬프지만, 그것이 희망이다
'모든 것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굴려야 한다